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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들

나를 흥분케 하는 것은 ... 디자인하기 전에 느끼는 순수한 상상의 순간들이다. -필립 스탁 via 박암종,『디자인 생각』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황현산,『밤이 선생이다』중 첫 줄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써진다면 첫눈처럼 기쁠 것이다. -심보선,「첫 줄」중 가을이 왔습니다. 다가오는 이야기 가을이 왔습니다. 지나가는 이야기 -신용목,「아무 날의 도시」중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이상국,「국수가 먹고 싶다」중 사진은 끝없는 응시로부터 나오는 무의식적인 영감이다. -브레송 via 존 버거,『글로 쓴 사진』 목숨 붙은 걸 함부로 맡는 법 아니라는데 어찌하여 우리는 -김정용,「빈 화분」중 누군가의 열정에는 열정으로 응할 것 -미우..

카테고리 없음 2014.11.14 (1)

나의 봄, 시의 봄

여느 봄인들 그렇지 않겠는가만, 올해도 봄은 불현듯 찾아와서 홀연히 가고 있다. 둘러보니 어느새 꽃들이 피어있고 바람은 슬그머니 부드러워지더니, 이제 하나둘 꽃이 지고 초록이 짙어간다. 아침 저녁 출퇴근길이 버스에서 지하철로 바뀌면서 가장 좋은 건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길지 않은 시간이라 시집이 가장 적절하다. 아니, 한두 편 읽고 멍하니 생각하다, 또 한두 편 뒤적거리며 음미하고.. 그렇게 읽기엔 시집만큼 좋은 게 없다. 그러다 며칠 전 접한 시 한 편. 마지막 구절이 봄을 느끼는 나의 심정을 딱 대변해준다. 내가 봄을 늦게 감지한 건지 봄이 성급히 가는 건지 모르겠다 싶은 상황을 저런 감탄과 확인으로 표현해 내다니.. 한 줄 싯구의 봄에 나의 봄이 명료해지는 느낌이다. 꽃범벅 꽃 베던 아해가..

카테고리 없음 2014.04.18 (1)

즐거운

초대할 분들께 보내는 청첩장.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를 바탕으로 삼아 직접 디자인했다. 흔한 청첩장은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었는데, 그게 꼭 독특한 청첩장을 해야겠다는 생각과는 좀 다르다. 완벽할 순 없겠지만 가급적 상업적인 모양새는 피하고 싶다는 정도.. 성공적인지 장담할 순 없지만 시를 통해 두 사람의 생각-결혼과 그 이후의 삶에 대한-을 비칠 수 있게 된 점만은 다행이라 여기고 있다. 모두 시를 사용해도 좋다고 허락해 주신 황동규 시인 덕분이다. 게다가 '좋은 가정'을 이루라는 덕담까지 해 주셔서 청첩장 만드는 과정이 한층 즐거웠다. 감사할 따름이다. (처음엔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를 실을까 생각했는데, 이제 막 결혼하는 사람이 읊기엔 좀 건방져 보이지 않나 싶었다.) 엄마 말씀대로 저 ..

카테고리 없음 2013.09.16 (9)

책과 아내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 곧 남편이 될 것이고 아내를 맞이할 것이다. 어느 시인이 그랬다. 사랑을 하는 것은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긴 사랑의 한 과정일 결혼을 준비하며 나는 조금씩 다른 존재가 되어감을 느낀다. 물론 애초에 생겨먹은 게 훌쩍 달라지진 않겠지만, '남편'이라는 존재는 분명 지금까지 형성하고 유지해 왔던 나와는 다른 어떤 존재임에 틀림 없다. 같이 살 집과 살림들을 마련하고 결혼식을 준비하면서도 이런 저런 계기로 나 자신을 다시 성찰하게 된다. 가끔은 애써 부정해 왔던 나의 어떤 기질에 직면해 괴로울 때도 있고, 어떤 때는 '그래, 나에겐 이런 면이 있었어..'하며 뿌듯할 때도 있다. 그런 솔직한 대면과 확인을 거치며 나는 남편이라는 새로운 존재의 한 국면을 갖추게 될 것이다. 두 사람..

카테고리 없음 2013.08.16 (5)

'깨우지 마라, 고운 잠'

來如哀反多羅 3 이 순간은 남의 순간이었던가 봄바람은 낡은 베니어판 덜 빠진 못에 걸려 있기도 하고 깊은 숨 들여 마시고 불어도 고운 먼지는 날아가지 않는다 깨우지 마라, 고운 잠 눈 감으면 벌건 살코기와 오돌토돌한 간처녑을 먹고 싶은 날들 깨우지 마라, 고운 잠, 아무래도 나는 남의 순간을 사는 것만 같다 -이성복, [래여애반다라] 中 결코 녹지 않을 것처럼 쌓여있던 눈들이 어느새 사라지고 3월, 개학을 하자 학교는 웅성웅성 생기를 찾고 있다. 이곳의 '봄바람'은 아직 한기가 남은 잔디밭에 앉아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낮술을 마시는 남학생들의 등덜미나, 졸라졸라를 뱉어대며 깔깔대는 어린 여학생들의 입술에 걸려 있는 것 같다. 출근길 이면도로의 눈 녹은 자리엔 쓰레기만 감춰져 있었고 지난 겨울 새로 들어선..

카테고리 없음 2013.03.11 (1)

신용목 [실상사에서의 편지]

[실상사에서의 편지] 감기에 종일을 누웠던 일요일 그대에게 가고 싶은 발걸음 돌려 실상사를 찾았습니다 자정의 실상사는 겨울이 먼저 와 나를 기다리고 천 년을 석등으로 선 石工의 살내음 위로 별빛만 속없이 반짝이고 있습니다 상처도 없이 낙엽은 섬돌에 걸려 넘어지고 석탑의 그림자만 희미하게 얼어가는 이 거역 없는 佛心의 뜰 안에 서서 정녕 그대를 사랑한 것은 내 생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은빛 시린 서리처럼 오랜 세월 말없이 견디는 계절의 눈빛마다 속 졸이며 현상되는 기억을 대웅전 연꽃무늬 문살에 새기다가 사람의 가슴에도 깊이가 있다면 그대보다 먼 그대의 그리움 또한 아득히 잠기겠지요 실상사 긴 담장을 품고 산허리 꽃 피고 눈 내릴 때마다 더러는 못 참아 술값을 치러가며 떠나온 그 자리 여기 ..

카테고리 없음 2013.01.20

김현의 [어린 왕자]

고 김현이 번역한 [어린왕자]가 새로 출간되었다고 한다. 그는 "삶의 건조함이 던져주는 무의미성, 생존의 어려움, 속말을 해줄 수 있는 나 이외의 존재에 대한 갈망 등이 나의 조그만 몸뚱이로 가득 차 버리는 조그마한 방을 짓누르고 있”던 때 그 책을 만났고, 책을 통해 “나의 삶의 상당 부분을 의미 있는 어떤 것으로 바꿔놓을 수 있었다”고 한다. 위의 저 초판본은 내가 태어나던 해에 출판되었다. 내 서가 혹은 엄마의 서가 어디쯤에 꽂혀있을거다. 만 40년 만에 새로 나온 책.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특히 "속말을 해줄 수 있는 나 이외의 존재에 대한 갈망"에 집중하면서, 김현의 변화를 나 또한 전해 얻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카테고리 없음 2013.01.04

겨울, 연애시

서울의 겨울 12 어느 날 어느 날이 와서 그 어느 날에 네가 온다면 그날에 네가 사랑으로 온다면 내 가슴 온통 물빛이겠네, 네 사랑 내 가슴에 잠겨 차마 숨 못 쉬겠네 내가 네 호흡이 되어주지, 네가 온다면 사랑아, 올 수만 있다면 살얼음 흐른 내 뺨에 너 좋아하던 강물 소리 돌려주겠네 - 한 강 날이 추워져서 그런가, 연애시가 잘 읽힌다. 다가올 연말이 두려운 탓인가? 글쎄, 그건 아닌 것 같다. 되돌아 따져보면 내 곁에 아무도 없었던 연말은 없었다. 가족이 있었고 친구가 있었고 연인도 있었다. 자취방을 옮기며 혼자 크리스마스를 지낸 어느 해 겨울도 외로움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그때고 지금이고 타인의 자취는 겹겹이 벗겨지는 양파처럼 나를 감싸고 있다. 나는 그 안에 복숭아씨마냥 박혀 있는 게 아니다...

카테고리 없음 2012.12.1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