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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읽기

허용 2011. 12. 2. 16:45
지난 6월부터 『논어』강독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이미 중반까지 진행되었던 터라 나는 [자한(字罕)] 편부터 읽었다. 다른 책도 함께 읽는 자리여서 『논어』의 진도는 그리 빠르지 않다. 요즘은 [자한]을 지나 가장 재미없다는 [향당]을 마치고 [선진]을 읽고 있다. 매주 목요일에 서울로 나가 강독을 마치고 다시 집에 들어오면 12시가 조금 못된다. 얼마 전까진 집 앞 편의점 의자에 앉아 맥주 한 캔 마시고 들어가곤 했는데, 요즘은 날이 추워 그러지 못한다. 대신 어제는 오뎅국과 청하 한 병을 사가지고 와 집에서 먹었다. 술이 살짝 오른 상태에서 논어를 읽으면 마치 시를 읽는 느낌이다. 짧지만 농밀한 형식 때문이다. 그 맛이 또 색다르니 좋더라.

 『논어』는『맹자』와 달리 글이 무척 함축적이며, 주장을 논리정연하게 풀어나가는 형식도 아니다. 그래서 문리(文理)를 익히는 데는『논어』보다『맹자』가 더 유익하다고들 한다. 책의 편제 역시 내용적인 순서에 따라 짜이지 않았다. 각 편의 제목은 그 편의 내용을 대표하는 단어가 아닌 그저 시작하는 문장의 앞 두 글자를 따서 붙이는 식이다. 예를 들어 [자한]편은 ‘子罕言利與命與仁’로 시작하기 때문에 ‘자한’이라는 편명이 붙었다. 하지만 ‘말이 드물다[字罕]’는 의미는 [자한]편만 아니라 『논어』 전체의 문체적 특징을 담는 말로도 적절한 듯싶다. 공자의 제자들이 후대에 묶은 어록이라는 점 때문인데, 그 덕에 공자의 인간적인 면을 엿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 [자한]편 중 얼마 전까지 곱씹던 부분이 있다. [자한]은 모두 30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장의 순서도 논리나 내용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서, 내가 주목했던 부분도 2장과 6장, 12장에 서로 떨어져 있다. 먼저 2장의 내용부터.

“達巷黨人曰, 大哉 孔子 博學而無所成名. 子聞之 謂門弟子曰, 吾何執 執御乎 執射乎 吾執御矣.”

내용을 윤색해서 정리해 보면 이렇다. 어느 날 ‘달항’이라는 마을 혹은 문파[黨]의 사람이 공자의 제자에게 말한다. “공자 선생은 참으로 위대하시다. 박학하신데 어느 한 가지로 이름을 이루지는 않으셨다.” 공자는 이 말을 전해 듣고 제자들에게 묻는다. “내가 어떤 한 가지를 잡을까? 수레 모는 일을 할까? 활 쏘는 일을 할까? 나는 수레를 몰겠다.” 공자의 대답이 좀 뜬금없다. 주희의 해석[朱子集註]에 의하면, 처음 말을 꺼낸 달항당 사람이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뜻은 공자의 학문이 넓음을 찬미하면서도 어느 하나의 기예로 이름을 떨치지 못한 것을 애석해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공자의 대답은 칭찬을 듣고 겸양하면서 받은 것인데, 활 쏘는 것이나 수레를 모는 것은 모두 하나의 기예에 불과하지만 수레를 모는 것이 더 비천한 일이니 자신은 그걸 하겠다는 소리다. 그런데 내가 듣기엔 공자의 말에 겸양이라기보다는 뭐랄까, 좀 비꼬는 듯한 뉘앙스가 있는 것 같다. 

공자의 대답을 좀 많이(!) 윤색해서 옮기자면, “내가 뭐 한 가지로 이름을 날린 게 없다고 하는데, 그럼 어떤 일을 해서 이름을 날리면 좋겠냐? 수레 모는 걸로 이름을 날릴까? 아니면 활쏘기로 이름을 날릴까? 수레 모는 게 더 천한 일이라는데 그럼 그걸로 이름 한번 날려보지 뭐!” 하는 투다.『주자집주』에 소개된 윤씨(尹氏)라는 이의 해석은 그런 뉘앙스를 조금 감안한 것 같다. 성인은 도와 덕이 완비되어 있어서 어느 한 가지 잘하는 걸로 이름을 얻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칭찬하는 건 이해하겠는데, 그건 사실 뭘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라는 게 그의 이야기다.

 유가에서 추구하는 이상적 인간상, 즉 군자(君子)란 어느 한 분야에 뛰어난 전문가가 아니라 육예(六藝)에 두루 통하는 사람을 말한다. 공자의 대답에 등장하는 활쏘기[射]와 수레몰기[御] 역시 예(禮) 악(樂) 서(書) 수(數)와 함께 육예에 포함되는 기술이다. 『논어』의 다른 구절에 등장하는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君子不器]”라는 말도 그 용도가 정해져서 다른 목적에 쓰이지 못하는 그릇처럼, 어느 한 가지 기술이나 재능만을 추구하는 것은 군자의 일이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한다. 그러니 내가 느낀 저 비꼬는 듯한 뉘앙스가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닐 테다. 당시의 군자란 왕에게 등용되어 자신의 이상을 한 나라의 경영을 통해 펼치는 사람이었다. 어느 한 가지 기예에만 능해서는 나라를 경영할 수 없었고 그래서 군자라 할 수도 없었다. 요즘처럼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직업 사회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그런데 정말 공자는 육예에 모두 통달했을까? 몇 천 년 동안 추앙받는 성인이시니 어련하시겠지만 사정을 들어보면 뭐랄까, 좀 짠한 구석도 있다. 6장의 내용 중 이런 부분이 있다. 

“子聞之曰, 大宰知我乎. 吾少也賤, 故多能鄙事. 君子多乎哉, 不多也.” (공자께서 그 말을 듣고 말씀하시길, 대재는 나를 아는구나. 내가 젊었을 때 미천했던 까닭에 천한 일에 능함이 많다. 군자는 (능함이) 많은가? 많지 않다.)

어느 날 대재라는 사람이 선생은 어찌 그리도 능한 것이 많으시냐고, 성인이라서 그런 거냐고 묻는다. 제자 자공은 하늘이 내려주신 성인이시라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공자가 하는 말이 바로 위 구절이다. 공자는 자신이 성인이라서 많은 기예에 능통한 게 아니라 미천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미천했다는 것은 왕에게 등용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지금은 성인처럼 보일 정도로 여러 가지에 능통하지만 사실 그런 능력은 젊었을 때 등용되지 못한 채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아 다녔기 때문에 익히게 된 거라는 고백(?)이다. 그러면서도 군자란 할 줄 아는 게 많은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빼놓지 않는다.

 타고난 것도 아니고 높은 자리에 있어서 그랬던 것도 아니고, 그저 자신의 능력과 이상을 알아볼 왕을 찾아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녔을 뿐이다. 그 와중에 이런 기술, 저런 능력들을 갖추어 갔고, 그러다보니 남들이 보기에는 다방면에 능통한 성인처럼 보이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다재다능함만으로는 군자가 될 수는 없다. 여러 의미가 복합된 ‘군자’라는 명칭을 오직 등용 여부에 따른 지위로만 이해한다면, 공자도 한때는 군자가 아니었다. 그럼 군자가 되기 위해 그는 어떤 노력을 했을까? [자한] 12장에 그의 태도가 나온다.

“子貢曰, 有美玉於斯, 韞匵而藏諸, 求善賈(價)而沽諸. 子曰, 沽之哉 沽之哉, 我待賈者也.” (자공이 물었다. 아름다운 옥이 여기 있으니 궤 속에 넣어 감추어 두시겠습니까, 좋은 값을 구하여 파시겠습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팔아야지, 팔아야지, 그러나 나는 좋은 값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능력을 갖추고도 벼슬을 하지 않는 스승에게 제자는 옥을 비유로 들어 물어본다. 좋은 옥이 있는데 감춰두는 것이 맞는지, 값을 치르고 팔아야 하는 게 맞는지. 스승은 파는 게 옳다고 말한다. 그런데 공자는 왜 두 번 씩이나 “팔아야지, 팔아야지” 하고 말했을까? 사람들은 대개 이 구절에서 함부로 나아가지 않는 군자의 태도에만 주목한다.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 때에만 나아가고 그렇지 않으면 물러나 때를 기다리는 것이 옳다고. 주희 역시 주해에서 ‘다만 값을 기다려야지 팔리기를 구해서는 안 된다[但當待賣 不當求之]’고 말한다.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께 왜 공자가 두 번씩이나 ‘팔아야지, 팔아야지’ 하고 말했는지 여쭤보았다. 선생님은 파는 것이 옳음을 강조한 것이라고만 말씀해 주셨다. 하지만 나는 저 대목에서 공자의 절박함, 혹은 자신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는 마음과 그럼에도 지키고 싶은 자존심을 읽었다. ‘누군가 나의 뜻과 능력을 알아보고 등용해 주었으면 좋겠지만, 정말 그렇게 되고 싶지만, 아직까지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구나. 그래도 나는 함부로 나아가지 않고 나의 능력과 가치를 제대로 알아주는 사람과 때를 기다리겠노라’는. 한동안 공자의 저 되뇜에 나의 심정을 의탁하며 지낸 날이 많았다. ‘당신도 그랬군요’ 하고.

이윤(伊尹), 백이(伯夷), 태공(太公)도 때를 기다리며 산속에서 혹은 바닷가에서 은거했었다. 다행히 그들에겐 탕왕(湯王)과 문왕(文王) 같은 훌륭한 임금이 있어 뜻을 펼칠 수 있었지만, 공자에겐 그런 사람이 없었다. (공자의 생애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최소한 저 말을 할 때는 그러했을 것이다.) 만약 끝까지 그런 임금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공자는 어찌 되었을까, 혹은 이윤과 백이와 강태공은 어찌 되었을까? 범씨(范氏)라는 또 다른 주해(註解)자는 ‘그대로 일생을 마칠 뿐[終焉而已]’이라고 한다. 그들은 자신의 뜻을 굽히면서까지 남을 따르고 옥을 자랑하면서 구차하게 팔리기를 구하지 않았을 것[必不枉道以從人 衒玉而求售也]이라고.

 ‘잉여’라는 말이 유행이다. 일하고 싶은 젊은이들은 넘치고 일자리는 없다. 뜻과 능력은 있으나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과거의 선비와 성인들은 그렇게 기다리다 생을 마치면 그뿐이었지만 지금은, 소위 나아가고 물러남이 생계와 직결되는 가혹한 이 시대에는 어떻게든 팔리기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뜻을 굽히는 것도 옥을 과장해서 자랑하는 것도 허물이 될 수 없다. 죽지 않아야 하니까. 대기업 취직에만 목매지 말라고도 한다. 하지만 학교에 있으면서 그들을 지켜보건대, 사회는 그들에게 다른 곳을 볼 수 있는 시야나 스스로 일을 도모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지 않았다. 오로지 이미 만들어진 길을 따라 남이 던진 문제만 풀면 안전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러니 요즘 자주 듣는 표현대로 그건 ‘그들의 탓이 아니다.’

 『논어』를 읽으면서 가급적 나는 내 자신의 삶과 지금 사회의 모습에 비추어 읽으려 노력한다. 곱씹을수록 지혜가 드러나는 구절이 여전히 많지만, 개인을 넘어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지혜를 찾기는 힘들다. 당시와 지금이 너무 다른 세상인 탓도 있겠고 얕은 이해도 큰 몫을 할 테다. 강신주의 새 책을 읽어보면 좀 나아지려나 모르겠다. 아무튼 술 마시며 논어 읽는 맛을 알아버렸으니 논어 읽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