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영화 [Life in a Day]

허용 2011. 9. 20. 11:42
9월 29일 모모에서 개봉한단다. 영화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링크를 따라가 보면 알 수 있다.



제작자가 전세계의 사람들에게 요청했던 것은 2010년 7월 24일, 바로 그날 하루, 자신의 삶의 순간을 담은 영상을 유투브에 올려달라는 것. 그렇게 모인 수많은 영상들은 21세기의 어느날 지구라는 행성에 사는 인류의 모습을 모자이크처럼 재구성하게 된다. 제작자는 또 사람들에게 다음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요청했다. "지금 주머니에 가지고 있는 물건은 무엇인가" " 당신이 사랑하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이 두려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영화를 기대하며 나는 그날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돌아봤다. 그리고 세 질문에 대한 답도.

2010년 7월 24일은 토요일이었고 방학 중에 여는 '어린이 박물관 교실' 준비로 한창 바쁠 즈음이었다. 남겨놓은 기록이 없어 정확히 재구성할 순 없지만 24일 전후의 기록들을 보건대 나는, 바쁜 주중의 일을 마치고 늦잠을 잔 뒤 해가 떨어질 무렵 자전거를 타고 광화문에 나갔으며 교보에 들러 책과 음반들 사이를 헤집고 다녔고 (은행계좌의 거래내역이 없는 걸 보니 책이나 음반을 사지는 않은 것 같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빌리 조엘의 [피아노 맨]을 들으며 혼자 맥주를 마셨다. 그리곤 마음에 맞는 가까운 사람들과 같이 마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그들을 그리워하며 블로그에 글을 남겼다. 그리고 계획 중인 교토 자전거 여행에 설레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첫번째 질문에 대한 답. 지금 내 주머니에는 아무것도 없다. 원체 주머니에 뭘 넣고 다니는 걸 싫어하는 데다 얼마전 지갑을 잃어버린 뒤로는 교통카드니 현금이니 모두 가방에 넣고 다닌다. 지갑을 새로 사지도 않았다. 채울 만한 것도 없고 아직 불편함도 느끼지 못한다. 간혹 내 삶(의 일정 부분)이 꼭 겉만 그럴싸한 빈 지갑 같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는데 없으니 차라리 낫다는 생각도 든다.

두번째 내가 사랑하는 것은.. 나의 가족과 나의 일. 지금 이곳 직장을 사랑하는 건 아니다. 박물관이라는 오래된 것들이 모여있는 곳과 그곳에 벌이는, 혹은 벌이고 싶은 일을 사랑한다. 그리고 자전거. 그 단순하고 솔직한 기계장치 자체는 물론이고 그것을 탈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과 쾌적한 날씨, 타는 동안에 느끼는 몸의 감각과 반응들을 사랑한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나라는 존재가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완벽한 죽음 속으로 사라지는 것. 오래된 기록과 물건들, 시간을 이겨낸 것들에 애착을 갖는 것도 다 이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나는 그런 애착마저 소용없이 흩어져 버릴 것이라는 걸 안다. 얼마전 장례식장에서 만난 선배는 그런 두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 삶이라고 했다. 요즘은 그 말을 화두처럼 품고 지낸다. 어쩌면 내 안에 있는 이 양가적인 감정, 삶에 대한 애착과 허무한 삶에 대한 체념이 서로 불화하는 모습을 견디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예고편만을 봐도 그렇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가슴이 참 따뜻해 질 것 같고, 듬성한 인간관계-알고 있는 사람들의 수와는 별개인-에도 외롭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