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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ding & Reading

허용 2010. 4. 18. 01:06
지난 달부터 한달에 하루, 삼형제가 모여 같이 자전거를 타기로 했었다. 오늘이 그 두 번째 날. 어제 새벽까지 '비즈니스' 때문에 술자리를 가졌던 형은 약간 늦게 합류했고 동생과 나는 12시반 경에 용산역에서 만나 라이딩을 시작했다. 중간에 형을 만나 한강변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마포까지 내려와 헤어진 뒤, 나는 제기동까지 자전거를 더 탔다. 대략 40km의 코스였다. 


의정부에서 용산역까지는 전철의 힘을 빌렸다. 전철 맨 뒷칸에 자전거를 실어 벽에 기대고 나는 그 자전거에 기대어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으며 내려갔다. 토요일 오전 약 1시간 가량의 지하철 여행(?)은 느긋하고 여유롭다. 맘 편히 늦잠을 자고 조촐한 '집 밥'으로 이른 점심을 때운 뒤에 오르는 전철에서는, 주중에 보았으면 별다른 감흥이 없었을 생활의 때에 절은 듯한 사람들의 모습이나 1호선 특유의 어둡고 눅눅한 공기가 조금은 달리 느껴진다. 그렇게 편한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도 하다. "죽음을 느끼는 순간이 동시에 삶을 가장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함을 이야기하는 책-[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속의 한 구절을 읽으며, 고등학교 시절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다 느낀 그 순간의 경험을 터올리기도 한다. 도로 위에서 자전거를 타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던 당시, 바로 옆으로 거대한 덤프 트럭이 회오리 바람을 일으키며 내 옆을 지나갔고 아슬아슬하게 휘청거리던 나는 두려움을 넘어 내 안에 죽음이 '현전'함을 퍼뜩 깨달았다. 그리고 바로 동시에 삶에 대한 애착, 지금 이 순간 살아있음의 중요함을 느꼈었더랬다.

용산역에서 시작해서 나는 도저히 구분하지 못하겠는데 동생은 척척 그 이름들을 대는 10개가 넘는 무슨 무슨 대교들의 밑을 지나 행주산선 끝자락까지 갔다. 지난 달 아쉽게 헤어졌던 여운을 오늘은 놓치기 싫은 마음들로 마포의 어느 맛집을 귀착지 겸 뒷풀이 장소로 삼았고, 그곳에서 형제들은 이른 저녁을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야말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이제 애써 되돌아보지 않으면 함께 했던 경험과 생각을 확인하기 힘들게 되어 버린, 조만간 40대를 함께 나게 될 형제들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는 값지고 소중하다. 사실 삶은 그런 작고 사소한 이야기들로 꾸려지는 거다. 대단한 이야기는 없다. 대단한 이야기라고 내세우고 그 이야기 속에 상대의 삶을 끌어들이려 할 때 내 이야기와 타인의 삶은 왜곡된다. 내 삶이 왜곡됨은 물론이다. 그런 왜곡은 전철에서 읽은 책 속, 아도르노의 표현을 빌리자면 '동일자'의 폭력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포에서부터 혼자 자전거를 타고 제기동까지 오는 동안 예전과는 다른 코스를 잡았다. 종로를 관통했다. 도로가 아닌 인도만 탔다. 주말 저녁 종로의 인도는 귀가길을 서두르는 사람들과 막 자리를 접는 노점들로 북적인다. 그 사이로 술에 취해 아무렇게나 누워 있는 노숙자들도 있고 못 알아들을 소리로 여전히 열띤 논쟁을 벌이는 할아버지들도 있다. 젋은이들 못지 않게 찰싹 달라 붙은 가난한 중년의 커플들도 눈에 띤다. 강남의 대로에서는 볼 수 없는 강북의 풍경이다. 그런 모습이 오히려 낯익어 종로를, 강북을 좋아하지만 그들은 글로벌이니 녹색이니 성장이니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멀다. 더구나 휘황찬란해지는 이 시대, 가진 자들만의 잔치로 요란하고 화려한 이 시대에 그들 노숙자와 노인과 가난한 모든 이들은 갈수록 '벌거벗은 존재'들이 되어간다. 아감벤이 말하는 '호모 사케르'로 살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날씬한 자전거를 타고 그 속을 지나가더라도 나 또한 마찬가지다. 나의 죽음은 그저 평범한 죽음으로 사소하게 흘러갈 뿐, 무엇을 위한 '희생'으로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나는 그들 호모 사케르가 두렵지 않고, 그래서 여전히 강북이 좋다.

제기역 지하철에 자전거를 싣기 전, 작은 커피집 거리 벤치에 앉아 커피와 담배로 노곤한 몸을 달래고 있을 때, 막 중년에 접어든 아들이 늙은 아버지를 모시고 가게로 들어왔다. 아들은 뭐라 뭐라 이야기하며 아버지에게 낡은 양복 웃도리를 벗어 덮어드리고 아버지는 손사래를 치며 한사코 뿌리친다. 입에 잘 맞지 않을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두 사람은 드문드문 이야기를 잇다가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자리를 뜬다. 흰 머리가 그럴싸하게 자리 잡았을 형제들의 아버지는 긴 겨울 끝에 찾아온 봄날, 서울 따뜻한 강북의 풍경을 어디쯤에서 지켜보고 계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