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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박/천박

허용 2010. 4. 29. 19:20
'순박(淳朴)'과 '천박(淺薄)'. 뜻과 어감은 천지 차이지만 순박함이 천박함으로 바뀌는 건 손바닥 뒤집는 것처럼 순식간인 것 같다. 더구나 이택광 선생이 지적하듯 '먹고사니즘'과 '반지성주의'가 팽배한 근래의 한국사회에서는 그런 변화-내 생각엔 타락-가 너무도 주저없이 행해지는 것 같다. 천박함으로의 타락이나 천박한 행위를 부끄럽게 만드는 윤리적 제어장치 혹은 합의된 가치관이 죄다 그 두 이즘에 잡아 먹혀 버린 탓이다. '교양에 대한 강박'이 없는 대학생들이나, 정치건 문화건 돈 이외의 기준은 대개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는 소위 '서민'들 역시 순박함과 천박함의 경계를 사고하지 못하(거나 안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 주변에는 그 차이를 의식하며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고, 비록 자주 접하지 못하지만 그들과의 공감대는 내가 천박함에 물들지 않도록 잡아주는 어떤 끈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러니까 순박함을 유지하는 힘은 개인적인 차원의 각성이나 긴장보다는 순박한 사람들과의 유대를 통해 더 많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그런 만남과 관계는 천박함을 수세적으로 방어하는 차원을 넘어 자신의 삶을 미학적으로 가꿔나가는 동력이 될 수 있다. 돈을 '쓰는' 곳인 박물관과는 달리 돈을 '벌어야' 하는 다른 일터의 사람들을 자주 접하는 요즘 드는 생각이다. 날이 풀리니 그런 순박한 얼굴을 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더 그리워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