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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봄, 시의 봄

허용 2014. 4. 18. 14:01

여느 봄인들 그렇지 않겠는가만, 올해도 봄은 불현듯 찾아와서 홀연히 가고 있다. 둘러보니 어느새 꽃들이 피어있고 바람은 슬그머니 부드러워지더니, 이제 하나둘 꽃이 지고 초록이 짙어간다. 아침 저녁 출퇴근길이 버스에서 지하철로 바뀌면서 가장 좋은 건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길지 않은 시간이라 시집이 가장 적절하다. 아니, 한두 편 읽고 멍하니 생각하다, 또 한두 편 뒤적거리며 음미하고.. 그렇게 읽기엔 시집만큼 좋은 게 없다. 그러다 며칠 전 접한 시 한 편. 마지막 구절이 봄을 느끼는 나의 심정을 딱 대변해준다. 내가 봄을 늦게 감지한 건지 봄이 성급히 가는 건지 모르겠다 싶은 상황을 저런 감탄과 확인으로 표현해 내다니.. 한 줄 싯구의 봄에 나의 봄이 명료해지는 느낌이다.

 

 

  꽃범벅

 

  꽃 베던 아해가 키 높은 목련꽃 예닐곱 장 갖다가 민들레꽃 제비꽃 하얀 냉이꽃 한 바구니 모아다가 물 촉촉 묻혀서 울긋불긋 비벼서 꽃범벅, 둑에서 앓고 있는 백우(白牛)한테 내미니 독한 꽃내 눈 따가워 고개를 젓고

  그 맛 좋은 칡순 때깔 나는 안들미 물오른 참쑥 키 크다란 미나리를 덩겅덩겅 뜯어서 파란 꽃떡 만들어서 쏘옥쏘옥 내미니

  소가 히이- 우서서 받아먹어서 한 시루 두 시루 잘도 받아먹어서

 

  아하, 햇살은 혓바닥이 무뎌질 만큼 따스웁더라

 

  아해는 신기해서 눈물 나게 슬퍼서 하도 하늘 보며 초록웃음 웃고파서 붉게 피는 소가 못내 안타까워서 속털도 빗겨주고 눈도 닦아주고 얼굴만 하염없이 쓰다듬고 싶어서 깔끌한 혓바닥이 간지러워서

  꽃과 같이 하르르 소에게 먹혔더라

 

  이 봄에 꽃들이 너무도 쓸쓸해지면

  곁불 쬐러 나온 나비가 겁먹은 왈츠를 춘다

 

  소는 제 안만 디려다보고 아릿아릿 아려서 시냇같이 줄줄 눈물만 흘려서 발굽 차고 꼬릴 들어 훌~훌~ 치달려서 철쭉송화 우거진 산에 숨어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데 아하, 앞산에 봄이 오자 꽃부텀 진다

 

-서상영, 『꽃과 숨기장난』중

※시선집 『내 생의 중력』 재수록

 

 

새 직장은 예전 직장보다 훨씬 빠르고 빡빡하다. 그래도 무난히 다니고 있는 건 누군가 옆에서 살뜰하게 챙겨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생경하지만 차분하게 흘러가는 2014년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