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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골과 생업과 마음'

허용 2012. 8. 28. 16:18

이번 중국 출장 중에는 유독 풍경보다 사람에게 시선이 많이 갔다. 찍은 사진들도 인물이 많다. 물론 '인물사진'이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한 것들이고, 몰래 찍은 사진들이 대부분이다. 이국의 낯선 풍광들을 보며 신기해하거나 감탄하기보다 그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시선과 감성이 더 많이 반응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본다. 예전 같았으면 미술사 전공자의 시선으로 전통건축이나 미술품들에 더 집중했겠지만 그런 호기심과 안목은 이제 많이 녹슬어 버린 듯 하다. 아쉽지는 않았다. 다만 사람들만 보고 다닌 시선의 무력함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시선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시선은 그들의 처지나 생활에 하등 도움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수잔 손탁의 말처럼 그들의 모습을 대상화함으로써 그들이 처한 사회적 조건의 재생산에 일조하는 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내가 전문적인 다큐 사진을 찍는 사람도 아닌데다, 그들을 향해 셔터를 눌렀던 것도 그들의 고통을 대상화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여인숙이라도 국숫집이다

모밀가루포대가 그득하니 쌓인 웃간은 들믄들믄 더웁기도 하다

나는 낡은 국수분틀과 그즈런히 나가 누워서

구석에 데굴데굴하는 목침들을 베여보며

이 산골에 들어와서 이 목침들에 새까마니 때를 올리고 간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 사람들의 얼골과 생업과 마음들을 생각해본다

 

-백석, [산중음(山中吟)] 부분

 

 

산골 여인숙에서 새까맣게 때가 앉은 목침을 베며, 시인은 그곳을 거쳐 간 사람들을 생각한다. 나그네, 사냥꾼, 장돌뱅이, 이름 모를 아낙네... 그들의 생김새와 하는 일과 어떤 마음으로 일생을 살아내는지를 생각하는데, 아마도 그가 생각해 낸 것은 평범한 얼굴과 고단한 생업, 그리고 가난한(무욕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들과 똑같이 목침을 베고 누워 한 켜의 때를 더 올리고 있는 시인. 나는 그의 '생각'이 단순한 공상이나 추측이 아닌 공감과 연민에서 뻗어나간 것이었다고 믿고 싶다. 나 역시 그랬다. 낯선 풍경 속에서 낯설지만은 않은 사람들을 향했던 나의 시선도 공감과 연민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 또한 내가 사진에 담았던 그들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한 생김새를 하고 고단한 하루살이로 생계를 이어가며 가난한 마음으로 생을 버텨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의 삶에도 행복한 일상이 있겠지만, 그리고 평범한 이들 중엔 더러 사기꾼도 있겠지만 그들의 삶에 드리워진 일말의 슬픔과 고통을 같이 아파하고 싶은 마음이 나로 하여금 셔터를 누르게 했다.

 

그러나 아파하는 마음은 맹물처럼 퍼져 증발할 뿐 색을 입히지도 높이를 더해가며 쌓이지도 못한다. 외양을 화려하게 장식하지도 못하고 축적한 부로 일상을 풍족하게 만들지도 못한다. 마음, 그래서 참 무용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은 그렇게 아파하는 마음이었다는 점만은 부정하고 싶지 않다.

 

 

밖은 봄철날 따디기의 누굿하니 푹석한 밤이다

거리에는 사람두 많이 나서 흥성흥성할 것이다

어쩐지 이 사람들과 친하니 싸단니고 싶은 밤이다

 

그렇것만 나는 하이얀 자리 우에서 마른 팔뚝의

새파란 핏대를 바라보며 나는 가난한 아버지를

가진 것과 내가 오래 그려오든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

그렇게도 살틀하든 동무가 나를 버린 일을 생각한다

 

또 내가 아는 그 몸이 성하고 돈도 있는 사람들이

즐거이 술을 먹으려 단닐 것과

내 손에는 신간서 하나도 없는 것과

그리고 그 <아서라 세상사>라도 들을

류성기도 없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내 눈가를 내 가슴가를

뜨겁게 하는 것도 생각한다

 

-백석, [내가 생각하는 것은] 전문

 

 

가진 것이 마음 뿐인 '나'는 화려한 삶도 부유한 삶도 살지 못한다. 초라하게 '마른 팔뚝'만 지닌 사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도 없고 사랑했던 사람도, 친했던 친구도 멀어져버린 그. 그의 가슴을 채우는 것이 한탄과 후회와 자괴일 수밖에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시인은 눈가의 슬픔과 가슴 속의 답답함을 되돌아 '생각'할 줄 안다. 스스로를 되돌아 보는 시선, 자의식. 더구나 그가 바라는 것은 화려함이나 부유함과 거리가 멀다. 돈 많은 아버지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시집간 처녀가 돌아오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즐거운 술자리와 새로운 책, 음악을 들을 유성기를 바랄 뿐. 소박하다면 소박할 수 있겠지만 화려함과 부유함을 넘어서는 기쁨이 그곳에 있다. 그리고 그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능력과 여유를 기르는 것도 사실, 무척, 어렵다.

 

시인이 목침을 베고 누워 그 사람들을 생각했던 것처럼 나는 그들의 '얼골과 생업과 마음'을 생각하며 사진을 찍었고, 스스로 되돌아 나 자신에 대해 '생각'했다. 무력한 것이 생각이지만, 언젠가 어느 날이면 나도 신의주 남쪽 어느 목수집에 세들어 살았던 시인처럼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생각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산골 여인숙을 거쳐갔던 사람들과 내가 중국에서 마추쳤던 사람들의 마음에도 갈매나무 한 그루 정도는 들어설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않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 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부분

 

 

*시의 원문은 모두 [정본 백석 시집](문학동네, 2007)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