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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어질 수 없는 꿈

허용 2010. 4. 25. 01:11
어쩌면 또 꿀꿀한 이야기가 될 것 같으니 웃긴(?)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자식들은 하나같이 이쁘고 잘생기게 보이나 보다. (아직 부모가 되어 보지 않아 실감은 못하지만 조카들을 볼 때 가끔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우리 엄마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엄마는 TV에서 잘생긴 남자배우들이 나오면 "저 배우는 O째를 닯았다." "저 배우는 O째랑 똑같네."하시곤 했다. 그런 배우들 목록 중에 이병헌도 포함되어 있는데, TV에서 이병헌이 나오면 (자, 이 대목에서 웃으시면 된다.) "아야, 저 배우는 꼭 용이랑 닮았다잉~." 하시곤 했었다.

그런 이병헌이 나오는 영화라서 좋아하는 건 결코 아니지만(흠흠..), 영화 [달콤한 인생]은 DVD로 소장하고 있으면서 생각날 때마다 돌려 보곤 한다. 예전에도 그 영화에 등장하는 한 대목을 인용해 포스트를 올리기도 했는데, 며칠전 엄마가 쓰신 글을 보며 그 영화의 나레이션 한 토막이 자동적으로 떠올랐다. "너무 가혹해..."하는 짠한(!) 대사를 마지막으로 주인공이 죽고 난 뒤 이어지는 나레이션이다. 내용인 즉슨...

어느 깊은 가을 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은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히 말했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동영상의 시작 부분에 그 나레이션이 나온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꾸고 나서 엄마는 진짜로 소주잔을 챙겨 아빠에게 가신 듯 하고, 그 곁에서 아빠가 그렇게 좋아하시던 술을 당신이 대신 마셔주신 듯 하다. 그것도 잎새주를, 네 잔씩이나... 그곳에서 보셨다던 보라색 제비꽃은 나 역시 그립다.

*3년전 이맘 때 찍은, 아빠 산소 위에 피었던 제비꽃... 산소 바로 옆 논에는 자운영 꽃무리가 참 고왔더랬다. 지금은 어떨런지..



엄마나 형제들이 이런 '이루어질 수 없는 꿈'같은 소릴 들으면 맘이 썩 좋진 않을 테지만, 만약 아빠가 살아계셨다면 지금의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실까 생각하곤 한다. 많이 외로울 때, 일상에 치여 힘들 때, 세상살이가 내 맘과는 영영 다르게 흘러갈 때, 혹은 아슬하게 찾아온 봄날 따뜻한 햇살 아래서, 아빠는 무슨 생각을 했었느냐고... 

이 봄이 서둘러 져버리기 전에 성긴 풀을 생전의 모습마냥 이고 있는 아빠의 산소에 찾아가야곘다. 그 때는 엄마와 같이 드신 술이 아쉬웠을 아빠에게, '이병헌을 닮은' 둘째가 종일토록 듬뿍 술을 따라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