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이전에 한 번 보러 갔고 설 쇠고 올라와 다시 한 번 보러 갔다. 그만큼 여운이 남는 작품들이 많았다. 처음 갈 땐 혼자였고 며칠 전엔 후배와 동행했다. 처음 갔을 때 눈에 들어왔던 작품들이 여전히 눈을 끌었고 두 번째 관람에서 새롭게 눈에 들어온 작품들은 없었다. 아마도 같이 간 녀석과 따로 둘러 보아서, 작품을 보여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아쉬운 부분이지만 그 느낌이란 게 쉽게 공유될 수 있을까 싶다. 진중권의 말대로 작품과의 '고독하고 개별적인 관계'를 유지할 때 관객은 표준적인 해석을 넘어 직관을 얻을 수 있고 그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요즘 그런 사밀한 체험-푼크툼-에서 나오는 해석이 과연 미술사학 논문이 될 수 있을까.. 헛된 고민 중이다.) 전차길을 건너는 노파, 꽃 파는 처녀들, 수레에 살림살이를 싣고 피난 가는 가족, 그 유명한 구직자 사진, 비오는 날 외투를 뒤집어 쓰고 길을 가는 꼬마들, 나무 등걸을 근접해서 찍은 사진... 흑백 사진을 찍고 싶게 만드는 사진들이었다. 전공과 관련이 있어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문화재사진과 예술가들의 초상 섹션도 재미있게 보았다. 종묘 정전을 찍은 사진이 건축물이 지닌 본래의 엄숙함과 무게감을 잘 전달하고 있다면, 칠궁을 찍은 사진은 사진가가 그 문화재에 대해 가진 느낌이 얼마간 담겨 있었다. 둘 중 어느 것이 더 낫다거나 바람직하다고 논하는 건 그리 생산적이지 않겠지만 그래도 해볼 만한 논쟁,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가 될 수도 있을 성 싶었다. 허백련의 초상사진을 보고 나서는 그의 그림을 폄하했던 내가 부끄러워졌고, 장욱진의 사진은 그의 짠한 표정이 사진을 가지고 싶게 만들었다. 박인환의 사진은 시인의 초상이라는 전형적인 표현이 가장 적합해 보였고, 서정주 시인의 사진 옆에 붙은 캡션을 읽다가는 눈물이 날 뻔 했다. 구상 작가의 초상은 약간 불안정한 구도가 오히려 사진을 오랫동안 바라보게 만들었다. 도록을 사려다가 사고 나면 정작 들춰 보지도 않게 되는, 손에 쥐고 있으며 오히려 애틋함이 덜하는 그런 상황이 싫어 말았다. 아직도 애틋함이 남아 있으니 전시가 끝나는 2월 12일 전에 한 번 정도 더 가게 될 것 같다. 그때는 아마 도록을 사게 되겠지.. 덕수궁미술관의 장점 한 가지. 관람시간 때문에 해가 저물고 난 뒤 고궁을 거닐기가 힘든데 덕수궁은 미술관 덕에 그게 가능하다. 차가운 겨울 저녁 공기 속에서 오래된 건물들 사이를 거니는 것도, 고궁의 야경을 바라보는 것도 썩 즐길 만한 일이다. 평일엔 7시까지, 주말(금~일)엔 9시까지 연다.